작년, 그러니까 2020년 8월에 작은 시골농장을 가꾸기 시작하신 아빠가 이웃집에서 새끼 강아지 한마리를 데려오셨습니다. 밭에 오는 산짐승이나 새들이나 쫓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산밑에 있는 밭이라 고라니, 꿩, 야생 고양이, 두더지 등등 짐승들도 정말 다양하게 오더군요. 데려온 강아지는 대부분의 시골잡종들이 그러하듯이 아비견이 누구인지, 몇개월 되었는지도 정확히 모른다고 했어요. 대충 2~3개월 된 숫놈 강아지 였습니다.
축 쳐진 귀에 꼬질꼬질한 털, 몸통보다 머리가 더 크고 이유없이 측은해 보이던 이 녀석의 이름은 졸졸이로 정해졌습니다. 무슨 종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는 없어보일 정도로 그냥 전형적인 우리나라 시골 누렁이 똥개 같아 보였습니다. 성격은 매우 소심하여 사람에게 자꾸 파고들고 안겨붙는게 심했고 밤에 잘때도 늘 낑낑대고 무서워했습니다. 진드기 때문에 목줄을 했지만 목줄을 풀어줘도 멀리 가지 못하고 주인만 졸졸 쫓아다니다가 주인이 자기 집에서 2~3미터 이상 멀어지면 더 나가지도 못하더군요. 그래도 기뜩하게도 대소변은 거의 오자마자 구분하였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쪽에 매놓았는데 대소변을 쌀때는 반드시 하우스 바깥쪽으로 나가 볼일을 보더군요.
2019년 9월, 농장에 온지 한달정도 지난 졸졸이는 행동반경이 조금씩 넓어졌습니다. 여전히 혼자서는 멀리 가지 앉았지만 낮익은 사람들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오라고 하면 머뭇, 머뭇하다가도 깡충거리며 쫓아 오더라구요. 조금 더 멀리 가서 또 부르고 또 부르면 꽤 멀리까지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활동성도 높아져 어디가서 코에 흙도 뭍혀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직은 자갈동산에 올려놓으면 혼자 내려오지 못했고 움직임도 많이 서툴렀죠. 외모는 축 쳐졌던 귀도 올라가고 얼굴에 있던 검은 털들도 점점 사라지더니 오히려 흰색빛이 더 많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머리가 몸통보다 큰 것 같네요. 도대체 얘는 무슨 종이 섞인 것일까요?
2019년 10월 이 되자 부쩍 성장을 하였고 어느새 새끼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농장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두다다다다하고 땅이 울리는 소리가 나면서 졸졸이가 튀어나왔죠. 제 다리에 매달리고 깡총깡총 뛰며 깨방정을 심각하게 떨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자기 스스로 자기 신체가 통제가 안되고 감당이 안되는 것 같은 느낌이들었습니다. 귀가 많이 쫑긋해지고 얼굴은 완전히 하얀 빛이 되었습니다. 다리도 많이 길어지고 얼굴도 점점 뾰족해지면서 마치 여우나 늑대같은 모습을 보였어요.
11월이 되자 사진하나 제대로 찍기 어려울 정도로 졸졸이는 정신이 나가버렸습니다. 깨터는데 와서 깻가지를 물고 깨터는 비닐포대 위에서 신나게 씹고 뜯고 즐기고 무아지경 난리를 칩니다.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뭐라고 하기도 어렵더군요. 나가라고 해도 말도 안듣는데 표정이 마치 '너는 짓어라 나는 씹는다' 라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로 가만히를 못있더군요. 그래서 이시기에는 사진도 온통 저모양 입니다. 그래서 어른들께 많이 혼났습니다. ㅎㅎ
2021년 1월 의 졸졸이는 어느덧 제법 성견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는 짓은 여전히 어린이 같았는데 이제는 뭔가 피지컬이 받쳐주어 제대로 묵직한 반항이 가능한 청소년 같은 느낌이랄까요? 일단 집착이 매우 심해져서 자기 인형, 공 등을 물고 빼앗기지 앉으려(아무도 안뺏음) 으르렁 거려가며 혼자만의 쉐도우 복싱을 벌였고, 식탐도 엄청나, 활동량도 엄청나, 성질머리도 엄청나 모든것이 엄청난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사람이 만지려는 것도 매우 불편해 하였고 특히 머리를 만지는 것을 잘 허용하지 않고 고개를 자꾸 쳐들고 피하더군요. 하지만 그러다가도 아빠가 산책할때 데리고 나갔다가 다른 집 대문 너머 자기보다 큰 개라도 짖으면 무서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빠가 안아줄때까지 꼬리를 말아 넣고 가지도 못했답니다. 저희는 그래서 졸졸이를 키보드 워리어라고 불렀어요.
4월이 되자 완전 성견같은 느낌이 나는 졸졸이의 모습이 완성되었습니다. 전반적인 모습이 어렸을때 모습과는 완전히 달려졌습니다. 시골잡종개들이 커서 어릴때 모습과 확 달라져 당황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는데 저희는 얘가 얼마나 클지, 색이 어떨지 등 어떤 것에 대해서도 전혀 예측이나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스럽지는 않았어요. 그냥 '아... 이렇게 컸구나.' 싶었어요. 대충 생각을 해보니 졸졸이는 스피츠 견종의 특징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쫑긋한 귀와 길지 않은 꼬리가 말려 올라간 모습, 주둥이가 뾰족한 모습이 스피츠와 상당히 유사했어요. 털은 장모종입니다. 그런데 스피츠 견종이 야생적 본능이 많이 남아있어 애완견으로 키우기에 쉽지 않은 견종이라고 하더라구요. 졸졸이도 시골에서 커서 다행이지 집에서는 절대 못키웠을 것 같아요. 서로 힘들었겠죠. 고집도 세고 자기것에 대한 집착도 컸어요. 주인을 그렇게 잘 따르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낮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해서 농장 근처에 낮선사람만 오면 짖고 난리가 납니다. 어차피 농장 지키라고 키우는 개였으나 괜찮은거 아니냐고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아쉽게도 졸졸이는 키보드 워리어입니다. 고양이가 와서 사료를 빼앗아먹으면 콧잔등이 한번 긁히고 빼앗기는 그저 예민하기만 한 쫄보입니다. 그래도 두더지나 쥐정도는 잘 잡습니다. ㅎㅎ
2021년 8월 봄에 털갈이를 심하게 한 졸졸이는 지금 가벼운 털옷을 덮고 있습니다. 아 물론 털갈이와 상관없이 털은 365일 신나고 자유롭게 뿜고 다닙니다. 이제 날이 추워지면서 점점 털이 두툼해 지고 있습니다. 한동안 견물이 어설프더니 인간이 마의 17세를 넘기듯이 성견이 되어 아주 예뻐졌습니다. 앞서 스피츠 견종이 야생적 본능이 많이 남아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자기 먹이를 건들이는 것에는 주인이고 뭐고 용납이 없었습니다. 또한 털을 빛어주려고 빛을 가져다 대면 공격처럼 여기는지 난리가 났구요. 다행히 지금은 둘다 많이 좋아져서 적당히 달래면 그냥 저냥 살만합니다. 개도 나이를 먹으면 의젓해 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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