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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육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제왕절개 수술 후기

by 요길로새 2023.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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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술 전날

 
병원생활  4박5일째이자 35주0일차. 
드디어 제왕절개 수술 전날이 되었다. 
그동안 병원생활의 피로도 누적되고 아침부터 스스로 약간 예민해진 느낌이 들었다.
 
다른날과 같은 일과과 반복되었는데, 수술전날이라도 태동검사후 마지막으로 최종 체중측정이 추가되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별다른 검사는 없었다.
 
그래서 오전은 다른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정이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와서 수술일정을 한번 설명해주었고, 나는 수술을 대비하여 샤워하기, 머리감기, 배변성공하기 세가지를 신경썼다. 수술후에  당분간 배변이 어렵고, 제왕절개 수술이라 특별히 변비가 없는경우면 관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꼭 배변하는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산모의 상태에따라 일정이 조금 달라지겠지만, 나는 수술을 위해 위와 같은 일정이 추가되었다.(사진의 빨간펜 체크부분)
 

- 수술부위 제모 : 오후4~5시. 소독후 면도기로 털 정리. 구석구석 제모하지는 않았고 아래쪽 배와 Y존 앞쪽 정도를 정리해주셨다.
- 항생제 반응 검사 : 오후 4~5시쯤 진행된 알러지검사로 팔에 항생제를 살짝 주입 후 피부반응을 살핀다. 

- 정맥주사 자리 확보 및 혈액검사 : 밤 8~9시. 주사 후 약간의 혈액체취. 이후 샤워가 어려우므로 그전에 샤워를 마쳐야 한다. 

- 수술과 마취 동의서 작성 : 자리에서 태블릿 PC로 간호사선생님께서 설명 듣고 사인한다.
- 밤12시 이후 물포함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금식시작

 
나는 그동안 부종이 크게 없어서 압박스타킹이 없었는데, 수술 후 혈전방지를 위해 압박스타킹이 필요하다고 간호사선생님께서 스타킹을 하나 가져다 주셨다. 자기전에 착용하고 자면된다. 

 
교수님은 마지막회진에서도 "내일? 잘 되겠지~"라고 하신 후 휘릭 사라지셨다. ㅎㅎ
 
아기들을 이제 직접 대면하기 전 마지막 밤.
기분이 오묘하고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이날 밤 태동의 절정.
내일 나오는걸 본인들도 아는것인지 뱃속에서 난리가 났는데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방광, 대장, 위장 안누르는 곳 없이 구석구석 골고루 차별없이 밤새도록 눌렸다. 
태동의 고통으로 수술이 두렵기보다 오히려 기다려질 정도였다.
 
 
 

2. 수술 당일

새벽 4시30도 전에 잠에서 깬날. 
6인실이라 늘 시끄럽고 입원 후 늘 자다깨다를 반복해왔지만 내가 예민해져서 그런지 유난히 심란하고 시끄러운 하룻밤을 보낸 느낌이었다.
 
- 수술전 -
 
다른날 보다 조금일찍인 5시40분 태동검사 후 정맥주사 자리에 수액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대기하고 있으면 항생제도 주입되고 소변줄도 끼워지면서 수술준비가 이루어진다.
소변줄 끼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태동으로 방광의 찌릿함에 너무도 익숙해진 탓인지, 대학병원이라 워낙 기술이 좋으셔서 그런지 아프지않게 금방 금방 끝났다. 
 
 
 
- 수술대기 -
 
그리고 대망의 이동. 
애들까지 포함해 거구의 몸이 된 나를 눕힌상태로 이동침대에 옮겨주신다. 
서울대 병원 진료시에 복도에 늘 줄서있던 파란 이동침대에 누워 분만장으로 들어갔다. 


분만장에 들어갈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감염의 위험으로 모두 폐기처리 되기 때문이다. 
안경, 머리끈, 주머니에 들어있는 휴지, 속옷, 핸드폰 등등 모든걸 빼내고 환자복만 입은채 들어가야한다. 
 
견딜 수 없는 몸의 무거움으로 딱딱한 이동식 침대에 누워 대기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이미 수술을 하고 나온 이 시점에서도 가장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은 이동식 침대위에서 똑바로도 돌아도 못누운 상태로 느끼던 10~20분간의 허리통증이 가장 괴로웠을 정도이다.
 
분만은 새로 리모델링된 곳이아닌, 외래때 초음파를 보러가던 구 분만장에서 이루워졌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니 그동안 한번도 들어와본적 없던 넓은 안쪽 공간들이 펼쳐졌다.
 
그리고는 드디어 분만장 안 침대로 옮겨졌다. 
선생님들이 어느정도 나를 옮겨 주신 후에는 내가 꼬물꼬물 몸을 옆으로 움직여 나란히 고정된 분만장 침대로 몸을 옮겼다. 조금 편안해진 침대위에 옆으로 눕는 자체로 일단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수술 중 -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후 척추 마취가 진행되는데 많은 선생님들이 날 둘러싸고 서로 여유있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진행되어 그렇게 무섭거나 긴장되지는 않았다. 마취 자체도 크게 아프지 않았다. 그냥 엉덩이 주사맞는것과 같은 정도 느낌이 들었다. 마취약이 들어가자 하반신이 따끈해지면서 살짝 저린듯한 느낌이 발부터 서서히 위쪽으로 올라왔다. 
 
소독거즈를 나의 가슴위쪽과 배쪽에 번갈아 닦아보며 "똑같이 차가워요? 비슷해요?"라고 물어보면서 마취정도를 확인하였다. 처음에는 아래쪽도 비슷하게 느껴지던 차가움이 마취가 진행되면서는 점점 사라졌고 어느순간 내 몸을 닦고 있다는 느낌은 있었으나 차가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느낌이 가슴 아래쪽 까지 진행되자 마취과 선생님은 다른 의료진에게 이제 됐다는 신호를 보내 주었다. 
 
어느새 내 가슴 아래쪽으로 파란 장막이 쳐져 있었고, 나의 양팔은 쭉 펼쳐져 표본실 개구리처럼 어딘가에 고정되었다.
하반신이 마취되면서 임신으로 인해 그동안 느껴졌던 허리통증, 무거움 등 모든 증상이 사라지는데 수술의 두려움보다 오랫만에 느껴지는 이 편안함이 좋을 지경이었다. 
오랫동안 익숙해져 한몸같던 통증과 불편함들...그래 원래 그런게 아니였지. 원래는 누우면 이렇게 편안한 거였지!!
 
수술준비가 다 되자 멀리서 전종관 교수님의 여유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곧 수술이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아무느낌이 없이 의식만 있기 때문에 무섭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하반신이 흔들흔들 하는 느낌이 들더니 "아이고 엄마 첫째는 아들이네?"라는 전교수님 목소리가 들렸다. 
 
"나왔어요? 근데 왜 우는 소리 안나요?"라고 하자 내 머리맡에 있던 선생님이 웃으시며 "지금 꺼내고 있어요~"라고 하셨다. 곧이어 들리는 하찮은 울음소리.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난다. 
몇시 몇키로 아들입니다~라고 음성이 들리지만 잘 들리지는 않았다. 
 
"둘째도 아들이네?" 라는 교수님 목소리가 바로 이어져 들린다. 
1분간격으로 빠르게빠르게 진행되는 수술. 
또 하찮은 울음이 이어졌고 틈도없이 "오우 셋째는 딸이네~"라며 싱글벙글 하는 교수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일부러 성별 모르고 들어오셔서 도박패보듯 까보시는게 소소한 즐거움이신가...ㅎㅎ
 
그렇게 아이들이 다 나오고 잠시 후 하얀 담요에 덮혀 얼굴만 보이는 아이들을 내 얼굴앞에 보여주시며 확인해주셨다. 그리고 잠깐 아기들이 엄마냄새를 맡을 수 있게 가슴위에 올려주었다. 
아기들을 본 첫 느낌은 어이없게도 "아 이렇게 생겼구나.." 였다. ㅎㅎ
내 자식이라지만 처음보는 낯선 얼굴. 
이제 알아가면 된다. ㅎㅎ
 
입원하던날 확인했던 마지막 초음파에서는 아이들이 모두 1.7kg대로 예상되었지만 태어나보니 첫째는 2.1이 넘었고, 둘째 셋째는 1.8정도였다. 
모두 신생아실로 간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느순간 매우 조용해진 수술실 분위기. 
마취과, 소아과 선생님들이 순차적으로 빠지면서 어느새 전교수님과 산부인과 인력만 몇 남은 상태에서 조용히 수술이 마무리 되어갔다. 
 
봉합할때는 배에서 물고기가 파닥파닥 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원하는 경우 수면마취를 해달라고 하면 해주신다고 하였으나 아픈것은 전혀 아니였기 때문에 나는 특별히 수면마취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몇달을 아이들을 품고 고생하다가 마주한 엄청난 디 데이 치고는 허무할정도로 빠르고 무난하게 수술이 마무리 되었다.  
 
 
 
- 수술 후 회복 -
 
수술이 끝나고는 새로 리모델링된 분만실로 옮겨져 회복시간을 가졌다. 
슬슬 내 피부의 감각이 돌아오면서 수술부위가 욱신욱신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맥박이 낮은채로 회복이 되지 않아 진통제 사용이 계속해서 보류되었다. 
 
"어어...선생님..저 이제 슬슬 아픈데여?"
"근데 이 진통제 사용하면 맥박이 더 떨어질 수 있어서요. 이것보다 떨어지면 좀 위험할수도 있거든요"
 
그렇게 회복실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 감각은 모두 회복되고 통증이 시작되었지만 맥박은 계속 간당간당 세월아네월아 크게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달아놓은 진통제의 벨브를 열지 못하고 나는 병실로 돌아왔다. 
 
병실에 돌아와 병실 침대로 옮겨지자마자 자궁에 고여있는 오로를 빼야한다며 간호사선생님들이 내 배를 두번 눌렀다. 
 
"하나, 둘, 셋 후우~"
 
는 무슨 저 진통제 못맞았단 말이에여!!!

"으아아아아아악~~~~~~~~~~"
병동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우는데 울면 배에 압력이 들어가 아파 울지도 못하겠는데도 안울수가 없어 울고 소리를 질렀다.

그 와중에 다른 환자들이 숨죽이고 내 소리를 듣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게 뭐 그 후불제 아픔이야...?
아니 진통제도 없이 아픈건 반칙이자나....

급한대로 다른 종류의 진통제를 가져와 부랴부랴 엉덩이 주사를 넣어주시고 수액으로도 걸어주셨지만 한동안 고통이 계속되었다.
 
 
- 수술 후 당일 -
 
그리고 잘 기억이 나지않는 수술 후 당일. 
그냥 계속 누워있었고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진통제를 맞으면서 조금씩 수술부위의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두통, 호흡 불편함 등 다른 증상들이 계속 느껴졌다. 
맥박은 아주아주 느리게 회복되었는데 이번에는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서 계속해서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런대로 안정되어 갔고 저녁 회진때는 "아이구 엄마 고생한 보람이 있네? 아들,아들, 딸?"이라며 싱글벙글하신 전교수님께 웃으면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손가락에 끼워놓은 측정기는 계속 삑삑 울려댔고 밤이되어 잠이 들려고만 하면 맥박과 산소포화도가 더 떨어지면서 이대로 잠들었다가는 자다가 저세상에 갈 것 같은 불안함이 들었다. 
 
결국 11시도 넘은시간 전종관교수님이 다시 오셔서 "수술할때는 괜찮았는데 왜 그러지? 엄마 원래 맥이 이렇게 약했나?"라며 피 검사를 해보기로 하였다. 
 
덥고 답답하고 아프고 갑자기 미치겠고 여기 못있겠는 느낌이 들면서 화가나기 시작했다. 살짝 공황이 온 것 같았다. 늘 그러려니 하던 병실의 다른 사람들의 코골이소리, 화장실가는 소리, 바스락바스락 과자먹는소리, 소근소근 떠드는 소리 등 모든게 아주 대환장할 것 같이 다가왔다. 이모든 것들과 함께 나는 고통의 밤을 보내야하는데 아직 12시도 안된 상태라는게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남편에게 "나 여기 못있겠어. 덥고 숨쉬기도 답답하고 못있겠어!!"라며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피검사 결과는 산소포화도가 크게 낮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증상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산소호흡기를 사용하고 밤을 보냈다. 산소호흡기와, 다행히 내 머리위에 있어 잠시나마 바람을 세게 조절할 수 있었던 에어컨, 남편의 부채질 덕분에 나는 조금씩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잠에 들었다. 
 
 

3. 수술 다음날

 
무사히 고비를 넘긴 다음날 아침. 
통증은 심했지만 전날처럼 머리가 아프거나 힘들진 않았다. 
그러나 한계에 다다라 이제 정말 1인실이 필요했다. 
 
수술전까진 6인실 생활이 할만했지만, 수술후에는 그렇지 않았다.

1인실이 확실히 오늘 나온다는 보장이 없었으나 다행히 1인실에 있던 사람들이 퇴원하게 되어 오후 1시쯤 1인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비슷한 시간에 소변줄도 빼고 오후4시까지 스스로 소변을 배출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적이고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문제는 소변줄을 뺄때까지 나는 침대에 누워 요만큼도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다는 것이다. 
서기는 커녕 앉는것도 너무 힘든데 내가 4시까지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볼 수 있을까....
 
나는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죽을힘을 다해 일어나보았다. 
진짜 진짜 기절할것 같이 아팠다.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서는것 까지는 성공했지만 더이상은 한발자국도 움직이기 어려워 다시 침대에 누워 그대로 기절한채 잠들었다. 
이제 애기들도 만나야하고 수유도 해야하는데 이상태로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둘째날은 아기들 수유를 포기하고 회복에 전념하기로 하였다.
아기들에게 미안하고 나도 아기들이 보고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회복이 먼저였기 때문에 회복에만 집중하였다. 간호사선생님들께 나는 왜이렇게 회복이 느린건지 묻자 남들과 비교하지 말라며 나는 셋이나 낳았고 그 자체로도 고위험 산모이며 회복은 개인차가 크니 무리하지말고 천천히 회복하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그러다가 내가 맥박이 떨어질까봐 걱정되어 진통제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산모님들은 이거 보통 하룻밤이면 다써요~"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에
"이걸 써서 안아프게 하고 많이 움직이는게 더 나을까요?"라고 묻자 "그럼요"라고 하셨다. 
 
이제 맥박도 어느정도 회복되었고 이때부터 진통제 폭풍 클릭....ㅎㅎ
진통제빨이였는지 나는 이후 놀랍게도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볼 수 있었고, 일어나서 이를 닦고, 복도도 한바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은 반드시 아이들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손유축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수술로 아이들을 낳았기 때문에 젖이 벌써 나올꺼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몇차례의 손유축에 찐득찐득하고 노란 초유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신생아실에 초유를 가져다줄 생각에 너무 신나 5~6방울 밖에 나오지 않는 초유를 젖병에 담았다.ㅎㅎ
그러나 초유를 가져다 주고 돌아온 남편은 "그거 못쓴대"라고 하였다. 
 
이곳 병원에서는 우유를 섞어서 주지 않는다며 양이 적으면 직수를 해서 먹이던가 양이 많아서 그것만 먹일 정도가 되던가 해야한다고 하였다. 
조금 아쉬웠지만 어쨋거나 모유가 나오는 가능성을 보았고 내일 젖을 물리기전에 젖이 조금이라도 나온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려하는데 또 다시 울리는 맥박 떨어지는 소리...
심장도 덜그럭덜그럭 쪼이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12시도 넘은 시간 심장엑스레이 처방이 떨어졌고 1층 엑스레이실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왔다. 
그렇게 또다시 산소줄을 달고 밤을 보내게 되었다. 
 
 

4. 수술 이튿날


오랫만에 조용하게 편안한 잠을 자고 일어난 날이었다.

아직 가스는 나오지않았고, 먹는양과 소변양도 계속 기록해야한다.

계속 나오는 죽식.
하지만 난 이거 맛있엉..ㅋㅋ

오늘의 목표는?
가스배출 성공하기.
애기들 셋다 수유해보기.
많이 걷기.

오전에 힘들지만 열심히 걸었고 12시쯤 가스배출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아기들을 만나는 시간을 갖었다.

한명씩 데려다주어서 너무 정신없지않게 연습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는데 그래도 꽤나 협조적으로 대해준 아가들에게 감사했다.

젖을 물려보라고 데려다주는 아기들이지만 당장 배고픈 아기를 굶길수 없어서인지 분유를 먹여서 보내주는 거라 크게 빨려고 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집에가야 그때부터 제대로 먹여볼 수 있을것 같다.

이렇게해서 나는 출산을 마치고 약간의 고비가 있었지만 회복도 하면서 육아의 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되기전의 나의 인생 이젠 안녕.
엄마로서의 나의 새로운 인생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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